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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계자의 변명-
나와의 인터뷰
EXCUSES OF SOMEONE
CONCERNED WITH ART-
INTERVIEW WITH MYSELF

1. 외도

공성훈 을(이하 공을)제가 알기로 당신은 지금까지 주로 예술 혹은 미술에 대한 비판 즉 ‘예술에 대한 예술’에 관심을 보여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인터뷰에서는 당신의 작업을 일종의 분광기(分光器) 삼아 ‘한국에서 미술하기’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의 스펙트럼을 대충이라도 짚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당신은 이력이 특이하군요.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에 전자공학과에 편입해서 졸업했네요. 그리고는 다시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군요. 혹시 먹고 살 방편을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요?

공성훈 갑(이하 공갑)당시의 저는 철이 없어서 먹고사는 문제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쨌든 몇 번 이야기하긴 했지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하고싶은 작업의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려는 이유도 있었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는 체질개선을 하고 싶었습니다.

공을체질개선이라니요?

공갑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발이 지상에서 한 30센티쯤 떠서 다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업하고 나니 허망했습니다. 화가가 되려고 하는데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야 할 지 막막했거든요. 그래서 뭔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미술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유일하게 물질을 다루는 예술인 미술을 제대로 하려면 뜬구름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공을당신이 한계를 느꼈다는 뜬구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공갑글쎄요. 대학 다닐 때 외웠던 선시(禪詩)가 하나 있습니다.

山是山 水是水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山不是山 水不是水 :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山是水 水是山 :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

山是山 水是水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첫째 행을 깨우치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행부터 익히려고 했던 제 성급함이 못마땅했습니다. 공(空)이 뭔지도 색(色)이 뭔지도 모르면서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읇조린 셈이죠. 논리의 극단을 거치지 않은 초논리가 저를 공허감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라는 뻔한 사실에서 다시 출발해 보고 싶었습니다.

공을지금 하신 말씀은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 그러니까 한국적 미니멀리즘 회화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공갑어느 정도는 그렇긴 하지만 사실은 제 자신의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도 제 어휘사전에는 정신, 영혼, 자연, 인간, 자유, 도(道), 기(氣) 등등과 같은 단어들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아니 괄호에 묶여 있다고 하는 게 적절하겠네요. 그런 보편적 용어들은, 외연(外延)에 비해 초라한 내포(內包)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적 배경에 따라서 또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심하게 말하면 착취당하기 쉬운 개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개념들에 의지하고 있는 미술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보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을비록 모호하더라도 아니 모호할 수밖에 없지만, 보편적 용어에 의지하는 미술은 현실에서 결핍된 것을 이상에 가깝게 현시한다는 점에서 예술의 초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공갑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초월성에 관한 문제에는, to의 문제 이전에 from의 문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to의 문제에만 과도하게 주목한다면 그 초월성이란 것은 허구가 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별을 보기 전에 제 발이 디디고 있는 곳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몇 만년 전에 반짝인 빛이 던져주는 계시보다 발바닥이 전해주는 대지의 감촉이 훨씬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결코 보편적 용어들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예술에서는, 보편적인 가치들이 보다 특수하고 개별적인 용어들을 통하여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본질적으로 시간변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인 미술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단편소설이 삶의 단면을 통하여 총체성을 암시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보편적인 가치를 보편적인 용어로 주장하는 방식은 정치나 철학에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를 관통했던 민중미술에 대한 입장도 궁금하군요. 민중미술이야말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니까요.

공갑하지만 민중미술 역시 민중이라는 보편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을당신은 추상화(抽象化)의 정도가 높은 거의 모든 단어들을 거부하고 있군요.

공갑그런 셈입니다.

2. 스타일 - 일관성

공을이제 당신의 실제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겠습니다.

저번 개인전 기간 중에 열린 포름 에이의 세미나에서 본 슬라이드에 의하면, 작품의 스타일이 일견 산만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더군요. 페인팅이나 목탄 소묘에서 전자 매체에 이르기까지.

공갑산만하다거나 다양하다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공을글쎄요. 저는, 예술가의 역할이란 침묵하는 세계에 대하여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답이라는 것이 비록 진리라고 할까 실재(實在)라고 할까 하는 것의 숨겨진 일면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게 볼 때 형식이 다양하다는 것은, 형식이라는 것이 작가가 찾아낸 어떤 의미를 담는 그릇이라면, 하나의 예술가로서 당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의 의미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갑부정은 할 수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 안에 정체성이라고 하는 ‘고정되고 단단한 핵(核)’같은 것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신념으로 삼을 만한 가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만약 저에게 그런 핵이 있다 해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살로 그 핵을 감싼 존재로서 핵이 진동하는 방향대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영화감독은 멜로, 액션, 사극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어도 괜찮고 왜 화가는 문제가 됩니까?

공을영화작가와 감독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작가란 명칭을 일종의 가치가 내포된 것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어떤 영화를 단순히 연출했다는 의미에서는 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겠지만, 그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이랄까 하는 것을 일관되게 천착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관점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바가 가치가 있다면 그 연출자는 작가라고 불릴 수 있겠죠.

공갑. . . . . .

공을따라서, 만약 당신 스타일의 다양함이 일관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전략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편집증적인 것에 대하여 분열증적인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한다면, 당신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공갑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 합리성이나 이성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거부를 뜻한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뒤범벅되어 있는 초현실주의 국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의미에서 초현실주의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는 포스트 모던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체도 모호한데 또 다시 외국에서 빌려온 잣대에 끼워 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이론적 시각의 표절, 가치 척도의 표절이 작품의 표절보다도 먼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을이야기가 샛길로 접어들었군요.

공갑그렇긴 하지만 한 마디만 더 해야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심지어 피카소조차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작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입체파의 4차원적인 지각체계는 우리에게는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동설이 저 쪽에서는 갈릴레이의 목을 날릴 뻔한 사건이었지만, 실학자 홍대용이 주장했을 때에는 중국에 간 우리 사신과 청나라 고관이 재미있는 발상이라며, 안주거리로 삼을 정도의 화제 밖에 되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공을우리의 시각을 확립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입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몇 마디 나누기로 하고 스타일의 문제로 돌아가죠.

공갑좋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작업이 제 나름대로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작을 통해서 추구되는 형식상의 일관성은 아니고, 거리의 일관성이랄까 아니면 위상(位相)적 일관성이랄까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술에 대한 예술이라는 말씀도 하셨지만, 문화나 예술을 바라보는 좌표상의 저의 위치를 가능한 한 원점에 가깝게 하고 싶었습니다. 원점에 서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가까이에서, 제게 항상 낯설게만 느껴지는 예술이나 문화를 간섭하는 여러 힘들의 파동의 위상차를 통하여 미술을 제대로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공을그렇다면 당신이 미술을 간섭하는 여러 힘들이라고 느꼈던 것들은, 당신의 작품들 그러니까 예술작품자판기라든가 미술관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다든가 하는 것들을 통해서 드러난 것으로 본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미술의 제도화, 미술의 상품화 같은 것들이 되겠군요.

공갑주로 그렇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표현하면 미술의 거품을 빼고 싶었던 것입니다.

공을현대미술이 사물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내어 낯설게 만드는 ‘소격효과(疏隔效果)’를 자신의 중요한 전술로 채용했다고 한다면, 당신의 경우는 미술 자체를 낯설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스타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미술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미술의 여러 가지 표현방법을 등가적으로 원용 내지는 차용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당신 작업의 스타일이 다양하게 되었다는 말씀 아닙니까?

공갑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공을하지만 당신의 작업을 당신의 작업이게끔 하는 고유한 개성적 스타일, 독창적 스타일의 부재에 스스로 불만을 느끼신 적은 없습니까?

3. 스타일 - 개성

공갑대문자 A로 시작하는 미술에 시비를 거는 작업을 할 당시에는 그런 불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제 작업을 보고 미술이 아니라고 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저 자신을 화가로 자칭하기보다는 미술관계자라고 했으니까요.

공을매우 자조적이군요. 미술에 대해서 일종의 짝사랑에서 비롯된 애증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좌절이 느껴집니다.

공갑미술이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것이겠죠.

공을역사적으로 미술이 중요하게 취급된 시대는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대에 이르러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공갑서구에서는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미술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90년대 들어서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 인파가 쇄도하고 매스컴에 미술관련기사가 자주 보도되기도 하고 또 삼사십대의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이 성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러한 일련의 흐름들이 미술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에 걸친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구경거리화, 연예화, 가십화, 상업화되고 있을 뿐인 것 같았습니다. 미술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공을너무 비관적인 시각입니다. 예술을 수용하는 쪽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문화적 토양에서 너무 성급한 기대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문화에 있어서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악화에 물리게 되면 양화를 찾게 되는 거죠. ‘악화의 교육적 기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문화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비록 그 태도가 적절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공갑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제가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미술이 사회적으로 주변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모순되게도 끊임없이 신화화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에게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가 용인되고 대중들은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술가가 자유롭다는 것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고 책임이 없다는 것은 권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결코 초월적이지 않은 사회, 경제적 논리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신화적인 것들은 뒷켠으로 밀려나서 신기루가 되고 현실적인 작용력을 박탈당합니다. 그리고는 그 질량 없는 외양만이 현실에서 결핍된 것을 가상적으로 보충하는 소비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작품이 감상되는 것이 아니라, 포장의 정도가 자본주의 발달의 척도라는 공식에 따라, 화가의 기이한 삶, 돌출행동, 겉모습 그리고 작품의 가격이 감상(=소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작가의 독창적 스타일이라는 것도 그 포장에 붙은 레이블(label)에 불과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공을오성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를 노래한 낭만주의 시대 이후로 예술에 여러 가지 신화적 색채가 덧입혀진 것은 한편으로는 총체적 세속화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도 있습니다. 즉 오염되기 쉬운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현실로부터의 적절한 격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갑저는 미술의 본모습(?)이 아니라 그 쓰임새(用)를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공을그리고, 고유한 스타일 없이 한 작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바꿔 말하면 스타일이라는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요?

공갑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술관계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제 작품이 무언가를 표현하기보다는 발언하기를 원했고 그러자면 상품화하기 쉬운 스타일을 피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감각적인 스타일을 피해가고 싶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스타일을 한 작가의 고유한 개인성이 물질적으로 형식화된 것이고 이때의 개인성이란 것을 주로 체질이나 신체적 특이성에서 배어 나오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결국 스타일은 흔히 감각이라고 부르는 애매한 것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좋은 스타일은 타고난 좋은 감각을 다듬은 것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저는 미술이 감각에 호소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감각’이나 ‘본능’이라는 개념은 블랙박스적인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어떤 작용을 지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물렁물렁한 감각으로는 제가 떠나려는 먼길에 쓸만한 지팡이를 만들 수도 없고 그리고 너무 순진해서 길가에 나 있는 작은 꽃송이에도 유혹 당하거나 속기 쉽기 때문에 믿음직한 안내자가 되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감각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미술이 시간을 초월해 감동을 주는 근거가 되긴 하겠지만, 스스로 진보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미술에 있어서 감각이란 안고 가야 하는 것이지 결코 앞장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감각 그리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제게는 마치 사랑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신파조의 순박한 복음처럼 들립니다. 제 감각을 홀릴 만큼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어딘지 파렴치하게 느껴집니다.

좀 장황하게 설명했죠? 단순하게 말하자면, 스타일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고안물이나 구조물일 뿐이므로, 그때그때 제 작업의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형식을 찾아나갔을 따름입니다. 스타일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사줄 것도 아니니까요.

4. 매체

공을지금까지 당신이 미술에 접근하는 방법을 한 마디로 ‘소거법(消去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타일마저 제거함으로써 당신은 스스로의 ‘작가성’을 증발시키고 있습니다. 즉, 전통적인 유화에서부터 하이테크를 사용하는 작품까지 매우 다양한 스타일들이 그야말로 범람하는 미술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한 작가 차원에서의 다양한 스타일은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보다 일관되고 강력한 목소리가 경쟁력을 가지기 유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찾아본다면 당신에게도 스타일들의 스타일, 메타스타일(meta-style)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 있기는 있습니다. 박찬경씨가 말한 대로 직역주의(literalism)라고나 할까요. 대부분의 작품이 말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작품과 제목의 관계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매체에 있어서도 환원적인 입장이 보입니다. 이번 개인전의 작품도 그렇지만 대체로 수작업에 의한 로우테크(low-tech)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당신의 경력이 주는 기대에 어긋나게도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시죠.

공갑먼저, 저는 하이테크를 사용할 만한 돈도 기술도 없습니다. 그리고 근대화 초기를 경험하지 못하고 막바로 현대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저로서는, 산업화 초기의 테크놀로지를 체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습니다. 개인 발명가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 시대의 테크놀로지들이 제 개인적인 능력의 범위에서 다루기도 더 편안하고 신화화되기 이전의 형태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더 정직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블랙박스화한 과학기술, 즉 입력과 출력은 알 수 있지만 시스템 자체는 마법상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첨단 테크놀로지들은 상대적으로 제 개입을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왠지 유토피아의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아 꺼려집니다.

공을미술에 있어서 매체는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간섭하는 적극적 기능을 합니다. 모든 표현이 모든 매체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감성에 호소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촉진시키고 미술의 표현 가능성을 넓혀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테크놀로지 아트의 역할이 아닐까요?

공갑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테크놀로지 아티스트로 분류되기도 싫고 테크놀로지와 미술을 결합시키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수박 겉 핥고 스쳐지나간 문제 중의 하나이지만, 테크놀로지를 미술의 매체로 채용하는 문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제가 ‘외형주의적 과학주의(externalist scientism)’라고 부르는 입장일 것입니다. 과학주의란 과학의 방법론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과학의 합리성과 진보에 대하여 맹목적 신뢰를 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외형주의적이라는 것은 가장 나쁜 의미에서 형식주의적이라는 말입니다. 그 신념은 최첨단 매체를 사용하면 최첨단 미술이라는 식의 손쉬운 등식을 만들어 버립니다. ‘新卽善(the newer, the better)’이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죠. 그리하여 겉모습뿐인 전위주의의 변종으로서 상업적 저널리즘의 선정주의와 영합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네온은 이미 1930년대에 상해의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고 텔레비전은 1929년에 실용화되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전통적인 회화보다 더 첨단미술일 수가 있습니까? 혁신(innovation)을 가치로 삼는 과학에 대한 열등감에서 미술마저도 첨단을 부르짖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을아마 그런 식으로 미술을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갑그래야겠지요.

공을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모더니즘의 기획 중의 하나가 예술과 삶의 경계를 철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요즈음의 비디오 아트나 컴퓨터 아트야말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공갑전통적인 미술에서는 그 매체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수련과 재능을 필요로 했지만, 비디오나 컴퓨터는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점점 쉬워지고 강력해지고 있는 그러한 매체들은 아마 땅 끝까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확산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기호만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질감이 결여된 신호처리(signal processing) 미술에 별 매력을 못 느낍니다. 마치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를 가졌지만 차가운 피가 흐르는 여자를 애무하는 느낌입니다. 물질임을 거부하고 단지 기호(digit)로서 존재하는 미술은 위생학적 결벽증의 징후로 보입니다. 저는 촉각적 관능, 땀 냄새가 나는 관능,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이라는 영화의 관능이 더 좋습니다.

5. 변신

공을그토록 다양한 작업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공갑항상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렸다면 실력이 늘기라도 할텐데 작업이 매번 바뀌다 보니 뭔가 쌓이질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걸레를 쥐어짜듯 작업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제 작업에 관성이란 없었으니까요.

공을대부분의 작가들이 스타일에 고착되어 있는 반면, 당신은 원점에 고착된 채 끊임없이 맴돌며 작업을 해나간 느낌입니다. 원점을 고수하고 결론을 미리 내린 이후에야 작업이 진행되는 방식은 자칫 창작상의 변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영양분이 분석의 칼날에 묻어나가 버리니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릅니다. 비록 당신의 작업이 당신 개인적으로는 소모적이었더라도 우리 미술판에서는 얼마나 생산적이었나 하는 것입니다. 즉 문학비평이 문학에 대한 문학이고 미술비평도 미술에 대한 문학으로서 가치를 지닌다면, 당신의 작업과 같은 미술을 통한 미술미평은 미술로서의 적극적인 가치를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미술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기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역할일 뿐입니다. 원점에 선다는 것은 퇴행적이기 쉽습니다. 원점이라는 위치가 전망을 넓혀주기는 하겠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서둘러 말한다면, 당신 작업의 생산성은 미술의 전제들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담론을 생성해 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공갑제가 그 동안 해온 작업이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비는 시비의 맞대응이 있어야 생산적이 됩니다. 반항의 표현으로 보이는 찢어진 청바지를 상품으로 파는 세상은 시비에 너무도 관대합니다.

공을당신의 이의제기가 주로 미술관 내부에서 이루어진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갑그럴 겁니다.

공을그렇다면, 96년의 MANIF전에서 선보인 풍경화들은 새삼스러워 보였습니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갑우선은 잘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트 페어라는 상업적 공간에서 제 그림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그림이 먼지로 그려진 그림이라도 과연 사줄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먼지그림인지 알아 챌 수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굉장히 더러운 그림이었거든요.

공을그래서, 팔았습니까?

공갑싼 값에 하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 .

공을먼지그림 이후로, 당신은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몸을 소재로 말입니다. 이전의 작업들이 자신을 숨긴 채 외부상황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슬라이드 작업들에서는 자의식이 배어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비걸기를 포기했습니까?

공갑단지 초점의 이동일 뿐입니다. 분명히 모순적인 상황이 있기는 한데 도무지 그 정체가 표적에서 벗어나 있는 듯이 보였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그러한 상황이 압박하여 만들어낸 증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미술에 시비걸기가 미안했습니다. 시비걸기에는 너무 허약해 보였으니까요. 시비를 걸고 있는 제가 위악적(僞惡的)인 것만 같았습니다. 위선이 선을 행할 의도의 부재라면 위악은 선을 행할 용기의 부재, 선행의 결과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비겁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을어찌 보면, 예술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주장하기보다는 자꾸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술이론이 발달한다는 것이 그 증거처럼 보여집니다. 과거에는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미술가와 미술대중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미술의 역할과 정당성에 대해서 작가 스스로가 정의를 내리고 그 결단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당신은 참으로 오랫동안 영점조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발버둥’이라고 이름 붙인 작년의 개인전에서 부유하며 몸부림치는 자신의 변태적인 모습은 영점조정의 마지막 대상으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듯이 보입니다. 상황에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 어떤 변신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김현도씨의 말대로 당신의 변신이 점입가경에 들어서기를 기대합니다. 상투적인 결론 같기는 하지만, 우리 미술판에서는 좋은 작품이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공갑감사합니다. 딴청부리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1998. 2 공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