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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뒤에 산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워낙 지저분해서인지 우리 집에는 벌레가 많이 들어온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개미군단이, 집주인인 내게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완전히 무시한 채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을 하곤 했었다. 어쩌다 한 녀석이라도 음식 포장지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데 성공이라도 할라치면 곧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는 저희들끼리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개미라는 것이 비록 큰 해악을 끼치는 벌레가 아니긴 하지만, 놈들의 염치없음이 못마땅해서 개미 베이트를 군데군데 붙여버렸다. 그 덕분인지 개미는 사라졌는데, 이번에는 눈치만 발달한 바퀴벌레가 빈자리를 메우고 들어왔다. 그것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은폐, 엄폐물에 숨어 기회를 엿보다가 이쪽이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혐오스럽게 번뜩이는 검은 등짝을 드러내며 도시 게릴라처럼 출몰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언젠가 지구가 황폐화되는 날 서로의 생존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을 생태학적 숙적이자 순수와 순결을 사랑하는 현대인의 결벽증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위생학적 오점인 바퀴벌레를 맞아, 두루마리 화장지를 여러 겹 말아 쥐고 잊혀진 수렵본능에 불을 지피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바퀴벌레와 만났다. 아니, 마주쳤다. 그것도 아니고, 부딪쳤다. 불을 켠 채 잠들었다가 얼핏 깼을 때, 내 눈을 가득 채웠던 그 바퀴벌레. 내 눈동자만한 그 녀석이 그 크기 그대로 내 눈동자로 밀려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평생 죽인 모든 바퀴벌레의 총화, 금속성의 검은 광택을 뽐내는 탱크, 선사시대 이래의 원한을 품은 살아있는 화석, 그 녀석과 나는 일대일로 만났다. 그 녀석의 눈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눈길을 마주쳤다. 소심한 신병이 시가전에서, 벽에 바짝 붙어 전진하다가 다른 쪽에서 접근하던 적군과 건물의 모서리에서 예기치 않게 부딪친 것이었다... 배경만 훼이드-아웃(Fade-out), 두 주인공은 정지화면. 가끔씩은 벽지 위에 돈벌레도 등장한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죽이지 못하게 했던, 죽이면 돈 나간다던 바로 그 돈벌레말이다. 평소 다지류(多肢類)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품고 있으므로 별로 죽일 생각은 않는다. 내가 그것들에 품고 있는 존경심이란, 그들의 놀라운 운동감각 때문인데, 다리가 두 개 밖에 안 되는데도 마냥 헛디디고,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나에 비하면 그놈들의 다리 움직임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 리듬감각, 그것은 디지털 카운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순차적 시퀀스, 야구장에서의 파도타기 응원, 군사 퍼레이드를 한 몸에 구현하는 것이다. 집에 개미가 있으면 바퀴벌레가 없다는 사실을 안 요즈음에는 차라리 개미를 키운다. 실상은, 개미 베이트와 바퀴 베이트를 둘 다 붙여야 마땅하지만 게으름을 핑계로 바퀴벌레만이라도 보지 않고 살기로 한 것이다. 어쩌다 재수 없는 돈벌레라도 나타나면 그 미물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통해 전해지던 바퀴벌레의 파쇄감(破碎感)의 향수를 달래는 제물이 되고 만다. 돈이 나가더라도, 그 우아한 다리 놀림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성훈 199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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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로댕갤러리, 2002

무제 2002 Rodin Galler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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